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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호]월남전영화 『워워 솔져스』와 『대한민국의 참전용사들』
베트남전쟁 시 3일간의 혈전, 미군영화다
 ○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6.25전쟁과 월남전을 연계)
 筆者는 2018년 6.25동족상잔(同族相殘) 68주년을 맞이하여 어렸을 때 배웠던 『6.25의 노래』를 먼저 소개한다. 그 노래의 가사는 박두진씨가 작성하였고 김동진선생께서 작곡하였다. 노래를 한 가수는 없으며, 『우리국민 모두』가 가수인 셈이 된다.
따라서, 『6.25의 노래』의 가사내용을 상기해보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을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했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당시, 김일성의 남침에 피눈물을 흘렸던 우리 민족의 비애(悲哀)와 국가안보에 대한 의지(意志)를 노래로 표현한 가사내용이다.
 그 후인 1953년 6.25전쟁은 휴전협정(休戰協定)이 되었고, 이어서 한국과 미국은 1953년 7월 한·미방위조약을 맺었으며 미국은 65년 동안 대한민국의 국방안보를 굳건하게 지원하였고, 오늘 날의 세계 10위권의 국가경제발전에 가장 많이 기여한 우방국이었다.
 특히 한국군과 미군은 자국의 국가명령(國家命令)에 따라 아래와 같이 두 번의 전쟁을 함께하였고, 피로 맺어진 전우(戰友)들이다. 첫째,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38°선 (휴전선)을 기습 돌파 및 남침하여 전국을 초토화시킨 3년간의 전쟁이었다. 둘째, 공산북베트남군은 17°선(휴전선) 이남지역인 남베트남국(월남)을 기습 남침함으로서 한국군과 미군의 파병을 요청하게 되었다. 우리 대한민국정부는 남베트남국과 미국의 파월요청을 받고 34만여 명의 장병들을 전투파병하게 되었으며,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약 9년간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터에 참전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임무수행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베트남전에서의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모든 연합군(8개국)들은 미국에서 제작된『워워 솔져스』영화와 똑 같이 戰鬪스토리(story)를 경험하였기에 국가안보적(國家安保的)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일자별로 치열한 전투상황을 소개한다.

○ 작전배경이다. 생사(生死)를 초월한 72시간의 전투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공개적으로 개입하게 된 동기는 1964년 8월 통킹 만에서 작전 중인 미 군 구축함 3척을 공격 및 손상을 입힌 때부터였다. 당시 미군은 베트남의 정글(jungle)과 습지 등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므로 한국의 6.25전쟁처럼 전면전을 시행한다는 건 힘들다고 판단하여 헬리콥터를 이용한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공중강습작전인 “은빛총검작전”을 드랑강 협곡으로 작전지역을 선택하여 1965년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미 육군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를 투입해 북베트남군(월맹군) 304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되었다.
 당시, 1대대장(무어중령)과 대대병력 395명은 월맹정규군에게 완전 포위되었으나 장병들은 상호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3일간의 전투기간에 적의 포위망을 교란과 와해를 시키면서 성공적인 소부대 전투를 실전과 동일하게 제작된 영화다. 대대장 무어중령은 제1기병 사단장의 철수명령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포위되어 사지(死地)를 헤매고 있는 C중대를 두고서 철수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다. 즉 “우리대대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서는 함께 돌아간다. 나 혼자 부하들의 시체를 버리고 철수는 절대로 할 수 없다.”라고 보고하였다. 한마디로 部下사랑정신과 전우애(戰友愛)를 소재로 한 멋진 대대급전투(大隊級戰鬪) 영화였다.
 한편, 대한민국의 맹호사단과 청용여단 등 전투부대가 최초로 1965년 10월 경에 남베트남의 중부지역 빈딘성(퀴논항)과 캄란지역에 상륙하여 진지편성 및 부대정비를 시작한지 1달도 안된 기간에 드랑강 전투(워워 솔져스)가 발생되어 당시 참전자들은 긴장 속에서 전투준비를 하였다는 후담도 있다.

 ○영화줄거리(작전명 : 적을 찾아내 섬멸하라(Find and kill the enemy) 미군은 월맹군과의 전면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최초로 베트남의 험준한 지형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헬기강습시험 전(戰)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이 시험 전투의 책임을 6.25전쟁 시 미국 제7사단 연대참모로 참전한바 있었던 무어 중령(멜 깁슨)에게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작전지역인 드랑江 협곡에 대한 사전검토에 들어간 무어중령은 이곳이 10여 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 첫째 날 전투(1965년 11월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1대대장인 무어중령은 395명의 부하장병들이 전투경험이 전혀없는 부하들을 이끌고 드랑 강 계곡의 X-RAY 헬기랜딩 지역에 헬기 고공침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지역을 사전에 점령하고 있는 월맹군은 모두 정예요원으로서 아군병력보다 5배나 많다는 사실은 선발대가 모두 포위된 상황하(狀況下)에서 희생당한 뒤에 알게 되었다. 적에게 포위된 새벽 2시 30분경이다.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에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갔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전우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전장 환경이었다.
 한편, UPI 종군기자였던 조 갤러웨이(배리 페퍼 분)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부상(負傷)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졌다. 그는 미군들의 희생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때 무어중령이 지급한 소총을 들고서 군인으로 변환되어 전투지역을 뛰어다니며 지원사격으로 아군을 전투를 지원하였다. 조 갤러웨이 기자는 훗날 무어중령과 함께 그날의 악몽같은 전투를 기록한『우리는 한때 젊은 군인이었다'(Once we were young soldiers)』를 출간하였다.
함경달 논설위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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