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률신문은 신문 윤리 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전체기사목록
          종합
          정부/종합
          국회/법률
          법무/검찰
          경찰/소방
          국토/환경
          판례
          문화/복지
          지방
          사회
          사설/칼럼
HOME >사설/칼럼
                          사설/칼럼
[제 358호] 50년 전 맹호사단 파월 10개월 만에 ~ 승전보 ~
5,000여년 만에 대한민국 국군이 이역만리(異域萬里) 월남전쟁(越南戰爭)에 참전 후 최초로 월맹정규군과 치열한 야간전투의 승리로 불패신화를 창조했던 맹호사단 기갑연대 9중대의 『두코전투』를 필자와 참전용사들은 다 함께 가슴조이며 생각나게 한다.
 맹호사단은 1965년 10월 월남공화국 퀴논(빈딘성)에 상륙 및 작전전개로부터 1973년 3월 철수 시까지 7년 6개월 동안 퀴논을 중심으로 작전(전술)책임지역 1,200㎢의 열대림속의 산악과 고보이평야지대가 공존한 광정면지역에서 대부대작전을 521회, 중대급이하 소부대전투는 무려 14,586회를 포함하여 총15,107회를 실시하였다.
 그중에서도 맹호사단이 1965년 10월 퀴논지역에 작전전개한지 10개월 만에 미군의『파울리비아작전』을 측면지원 하기위하여 1966년 7월 9일 기갑연대 3대대를 두코(Duc& Co)지역으로 이동하라는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들은 맹호사단 사령부가 있는 퀴논(Quy Nhon)으로부터 19번 도로를 따라 25km 서쪽으로 가면 빈케(Binh Khe)라는 소도시 인근에 기갑연대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계속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안캐패스(An Khe Pass), 그리고 소도시인 안케(An Khe)에 미 제1기갑사단이 주둔하고 있었고, 더 나가면 월남군 제2군단사령부가 위치한 푸레이쿠(Plei Ku)를 지나, 캄보디아 국경선에 접근하면 두코(Duc Co)라고 불리는 해발 200∼300m의 고원지대가 있다. 그곳에는 산악 소수민족인 ‘몬타나(Montagnard)'족과 월남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중대전술기지(주둔지)를 구축하였다.
▣ 작전지역의 특징, 평소 9중대의 방어진지구축과 주둔지 방어훈련은 철저했다.
 먼저 작전지역의 특징을 살펴보면 일명 두코지역은 「호치민루트」에 인접하여 적과의 접전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호치민루트」란 100여년 동안 불란서의 식민지시절부터 베트남의 독립투쟁을 위한 작전병력과 전쟁물자를 중국 및 하노이로부터 운반시키는 통로로 부르는 특수한 용어다. 특히 두코(Duc Co)는 캄보디아국경선으로부터 약4Km 이격되어있는 푸레이쿠(Plei& Ku)성의 행정구역에 속해 있다.
 특히, 맹호사단장 고) 채명신 소장의 특별시지에 따라 월남전 양상(樣相)에 부합토록 연구 발전시킨 「중대전술기지 방어개념」은 최일선 개인초소로부터 분초와 분초, 소초와 소초, 중대지휘소를 연계하여 철조망과 크레모아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장애물의 통합 설치하였고, 조기경보 체계의 강화, 그리고 각종 포병화력계획과 연계된 야간조명 계획은 월맹정규군이 동·서·남·북 등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나 야간 은밀 침투공격에 대비하여 발전시킨 주둔지 방어개념이었다.
 따라서 9중대장(이00대위)과 예하 소대장 및 소대선임하사, 분대장 그리고 각개병사에 이르기 까지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책임지역 방어진지 축성을 효과적으로 구축하였고, 더 나아가 각종 상황과 부합된 주둔지방어훈련을 가용시간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9중대장(이00)은 추가적으로 각 소대장에게 특별지시한 내용으로서 첫째 유개호를 보강하라. 취침호, 공용화기진지, 탄약고, 관측조는 필히 유개호로 구축하고, 개인호도 적의 중요한 접근로에 있는 것은 유개호로 하라. 둘째 조기 경보를 위하여 조명 지뢰를 추가로 설치하되, 외선부터 200∼500m 적의 예상 접로상에 집중적으로 부설(附設)하라. 셋째 그리고 조명지뢰 100여 발을 추가로 획득하여 개인 휴대하도록 조치함으로서 월남전 특이한 양상(樣相)과 부합된 「중대전술기지 방어」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 적[敵:월맹군 제308사단 88연대 5대대(약600명)]의 작전의도를 살펴보면!
 먼저, 월맹정규군과 베트콩의 작전요결을 단계별로 소개한다. 제1단계는 월남의 특이한 지형(地形)과 기상(氣像)을 최대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전투력유지를 위하여 최대한 철벽보안(鐵壁保安)을 유지하고, 전투나 작전은 승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충분하게 보강될 때까지 기존 작전지역에서 철수하거나 후퇴를 실시한다.
 제2단계는 충분한 전투장비가 확보되고 공격을 위한 전투력이 유지될 때 서서히 공세로 전환하되 되도록이면 주간전투를 지양하고 야간 기습공격을 해야 한다는 작전요결로 교육되어왔다.<작전요결(作戰要結)를 적용하게 된 배경 : 북 월남지역에 있는 『디엔비엔푸계곡』일명 『디엔비엔푸 죽음의 계곡』은 라오스 국경에서 30㎞, 중국국경에서 120㎞, 그리고 하노이 서쪽 160㎞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치민루트의 시발점이었다. 『디엔비엔푸 죽음의 계곡』전투는 1954년 호찌민이 이끄는 비엣민군(4만 8천 명)과 프랑스군(1만 1천 명)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유명하다. 이 전투에서 완패한 프랑스군는 인도차이나에서 100년 만에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이때부터 상기 월맹군의 작전요결은 지속적으로 적용하여왔다.>
 제3단계는 9중대의「중대전술기지」를 결정적으로 공격, 격멸하기 위하여 야간 은밀(夜間隱密) 침투조로 통로를 개척하고 동시에 대량의 박격포탄과 지원화기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이 설치한 장애물지역을 초토화시키면서 보병을 신속하게 인해전술형(人海戰術型)인 파상공격(波狀攻擊)을 지속적으로 압축하여 맹호사단 9중대를 완전히 섬멸한다는 계획이었다.
▣ 6시간의 치열한 야간전투 시 한·미 성공적인 연합 및 협동작전도 대단했다.
  당시 미군 25사단 3여단의 작전목적은 미군과 함께 호치민 루트를 저지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작전명령은 광범위 두코지역 일대에 전술기지를 구축하고 적의 내륙침투를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1966년 8월 9일 칠흑같이 어두움 밤 10시 40분경에 9중대장(이00대위)에게 최초보고가 들어왔다. 즉 2소대 전방 청음조 앞에서 조명지뢰가 터졌지만 육안에 아무것도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치 못하였다는 보고를 받았고, 이어서 미군 전차경계병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하여 전면(全面) 중대전투태세를 유지하려다가 짐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일단 보류하였다. 그로부터 5분도 안 되어 또다시 청음조에서 전방에서 땅 파는 소리가 들린다는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징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라고 지시하였다. 9중대장은 세 번째 호를 파는 소리가 들린다는 상황보고를 받은 즉시 미군 전차에 장치된 탐조등을 소리나는 방향으로 비추라고 지시하였다.
 2소대 청음조지역으로 탐조등을 비추자마자 적이 보였고, 동시에 적의 기관총탄이 9중대진지로 쏟아졌다. 이어서 아군의 머리위로 수십여발의 박격포탄이 떨어지면서 일부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치열한 야간전투가 시작되었다.
 기관총 및 소총, 박격포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새벽 1시경에 전차탐조등과 조명탄에 비친 적의 4∼5차 파상공격(인해전술)기세는 폭 50∼60m 정도의 대열로 맹렬하게 공격해 오고 있었다.
 월맹군은 아군 배치도를 진작부터 다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중대 지휘소를 향하여 박격포탄을 집중하면서 소대방어진지에도 200여발의 박격포탄이 쏟아졌다. 당시 배속된 미군 25사단 69전차대대 1개 전차소대가 적 박격포의 치열한 포격 하에서도 효과적인 전차포 및 Cal50기관총사격을 실시하였고, 뒤늦게 도착한 미군 항공기 2대가 공중조명지원을 간단없이 지원하여 적(敵)의 공격의지와 기동력을 돈좌(頓挫) 및 지연(遲延)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9중대를 직접지원하는 FO(포병관측장교)는 맹호사단 2개 포대와 미군 3여단의 1개 포대에 파상공격으로 침투하는 적을 정확하게 관측하여 적시적인 조명탄 지원과 고폭탄사격을 신속 정확하게 제공하여 189명의 적을 살상(殺傷)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따라서, 우리 한국군이 월남전 참전사상 가장 성공적인 중대전술기지 방어전투를 150여명으로 편성된 맹호사단의 1개 중대가 월맹정규군 1개 대대 600여명을 격멸시킨 전투였다. 이는 성공적인 한·미연합작전 및 협동작전으로서 보병(步兵)·전차(戰車)·포병(砲兵)·항공(航空)·공병(工兵) 등 전투병과가 통합된 경이롭고 통쾌한 승리(勝利)였다. 본 작전의 전과(戰果)로는 적 사살 189명, 포로 6명, 소화기 62정, 공용화기 28문, 기타 수 만발의 실탄을 노획하였으나, 아군피해(被害)는 9중대장으로 부임할 예정이었던 고) 강00 대위를 비롯해서 6명의 전우가 전사하였고, 2명의 소대장을 비롯해서 42명의 전우들이 중경상을 입었던 전투로서 야간전투(夜間戰鬪)의 귀감이 되었다.▣ 창군이래 중대급 야간전투로서 세계 최대의 불패신화를 창조하였다.50년 전(前)! 맹호사단 파월 10개월 만에 세계 뉴스초점은
자랑스런『두코전투』승전보(勝戰譜)로 가득 메웠다!50년 전(前)! 맹호사단 파월 10개월 만에 세계 뉴스초점은
자랑스런『두코전투』승전보(勝戰譜)로 가득 메웠다!좌:「중대전술기지 진지편성」실물사진. 우: 각종시설과 연계된 중대전술기지구축 도면좌:「중대전술기지 진지편성」실물사진. 우: 각종시설과 연계된 중대전술기지구축 도면좌:「중대전술기지 진지편성」실물사진. 우: 각종시설과 연계된 중대전술기지구축 도면좌:「중대전술기지 진지편성」실물사진. 우: 각종시설과 연계된 중대전술기지구축 도면<적의 파상공격을 격퇴하는 장병들!><내외 종군기자에게 공개하는 최대의 전과> = 본사편집의원 함경달
[ 목록 ]
회사소개 | 연혁 | 지사소개 | 광고구독문의 | 취재요청 기사제보
대표전화 : 02) 9533-114 취재본부 02)795-2264 FAX : 02) 921-9709    등록번호 문화 다 06374
대한법률신문   발행인 : 황광만  편집국장 : 한명구  인쇄인 : 이정자   주소 :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1가 43
copyrightⓒ 2007 by 대한법률신문 all right reserved       webmaster